가정집 벽에 높게 걸려있는 벽시계 하나로 하루 일정을 채워가던 시절이 있었다. 아버지는 한 주에 한 번씩 열쇠같은 고리로 찌르륵찌르륵 소리를 내면서 시계탑을 주었다.
밥죽같은 시계추가 쉼없이 좌우로 흔들며 째깍거리는 소리와 더불어 시침과 분침, 초침이 각자 부지런하게 자기의 원을 잘도 그린다.
어쩌면 시계는 바람개비처럼 심장 하나로 버티면서 허무한 세상을 달래는 것이 아닐가? 아버지는 나에게 시간은 길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깊이가 있다고 했다. 누구나 하루 세끼 먹고 자는 생물시계로부터 종소리시계, 그리고 생존과 자아완성의 시계로 살아간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의 깊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져 머무름이 없이 일정한 빠르기로 무한히 연속되는 흐름이다. 시간의 흐름은 순환하지 않기에 시작과 끝이 있다. 물질의 기본적인 존재형식, 예하면 돈은 시간이 만들어 낸다. 수수께끼 같은 시간의 개념은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진행은 이해하기 어렵다.
자연의 사계절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춘하추동의 순환을 한다. 어린 시절 나는 엄마 옷을 입고 신발을 끌고 다니면서 빨리 크고 싶었다. 어른들의 절대적 권위가 너무 부러웠고 그들의 세계는 백화가 만발한 화원인 줄로만 알았다. 내가 그 문에 들어서고 보니 세상은 만만치 않고 눈이 조금 열릴가 하니 벌써 가을을 맞게 됐다.
봄이면 씨앗이 싹트고 여름에는 줄기를 뻗으면서 무성하게 자라고 가을이면 수확을 하고 겨울을 맞이하는 자연의 사계절은 어떻게 보면 반복인 것 같다. 하지만 작년 봄과 금년 봄은 봄이라는 글자 하나가 같을 뿐이고 절대적으로 다르다. 사계절의 시간은 무한대의 변수로 수축의 길이를 만들어내고 있지만 오늘은 유일한 다시 올 수 없는 소중한 하루이다.
나에게 주어지는 하루 24시간은 수자로 기록되면서 자연의 변화로 보여지고 느껴지는 것이다. 오늘 아니면 내일 하지...
이렇게 미루는 습관은 시간의 깊이를 무시하는 것이다. 인생의 사계절은 움직이고 변화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이런 소중한 변화가 바로 인생에 의미를 부여해 준다. 인간은 자연계와 달라서 가을에도 봄날을 맞이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면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을 구분해 주는 특징이 아닐가?
시간은 수축처럼 크기가 있을 뿐만 아니라 좌표처럼 종축인 깊이도 있다. 인생은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시간의 깊이에 따라 자신의 좌표를 만들어 간다. 풍부한 경험과 지혜의 그릇은 주요하게 시간의 깊이로 얻어진다. 우리가 매일 아침 지갑에 들어오는 빳빳한 현금 24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하나의 점을 만들고 그 점들이 모여서 자신의 인생궤적을 만들어간다. 꿈이 있는 인생은 아름답다. 자기의 꿈을 가지고 작은 목표 하나하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견지하는 정신은 바로 시간이 깊이로 살아가는 과정이다.
요즘은 백세시대라고 사람마다 길게 살기를 원한다. 그것은 아마도 시간의 길이로만 인식하는 인간의 욕심인가 보다. 사람마다 장수비결에 무 척 신경을 쓰고 있다. 시간의 길이로는 육체의 성장을 볼 수 있는데 지구촌에 살고있는 모든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육체의 성장을 동반한다. 육체적으로 길게 산다는 것은 그만큼의 시간의 길이와 같이 지구촌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다.
이떤 사람의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사람의 죽음은 홍모보다 가볍다는 말이 있다. 길게 사는 것보다 깊게 사는 것이 인생의 가치가 아닐가? 인생은 시간의 밀도를 보아낼 때 현재에 휩쓸려 흘러가는 인간이 아닌 현재를 극복하는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인간의 우정에서도 시간의 흐름과 함께 깊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정은 근근이 시간의 길이에 정비례함은 아니다. 짧은 시간 속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주고받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시간의 길이가 길어서 서로를 알아가는 것보다 시간의 깊이가 있어 서로를 느낄 수 있다.
인간에게 지적이고 지혜와 능력 그리고 영혼의 성장은 시간의 깊이가 주는 선물이다. 여분의 시간을 꿰차고 먹고 놀기에 바쁜 사람과 시간을 아끼면서 계획있게 알차게 사는 사람의 인생은 극과 극이다.
미국의 토크쇼 진행가 오프라원포리가 바로 시간의 깊이로 인생을 살아가는 선구자이다. 그의 어머니는 흑인의 성폭력을 당하여 어쩔 수 없이 사생아를 낳아서 버렸다. 오프라원포리는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어머니마저 버린 의지가지없는 고아이다. 그는 보육원에서 자라다가 도망쳐 류랑을 했다. 하루하루 거지처럼 떠돌며 남의 집 창고에서 살다가 집주인을 만나 양딸로 되었다.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오프라원포리는 출생의 비천함에 주저 앉지 않고 열심히 일하며 배우고 최선을 다했다. 결국 미국에서 20위에 들어가는 갑부가 되였으며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는 훌륭한 인물이 되였다. 그는 시간의 길이보다 시간의 깊이를 잘 터득하고 귀한 시간을 보석처럼 아끼고 쓰면서 가치가 있고 행복한 삶을 창조하였다.
나이를 먹어가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인생은 꿈과 열정을 잃어버릴 때에야 비로서 늙는다. 만약 우리가 인생의 종좌표인 시간의 깊이를 터득하지 못하면 수축과 같이 생물시간의 길이로만 살다가 끝나게 된다. 장수와 영생, 그리고 금전의 바벨탑을 쌓기보다 꿈을 가지고 시간의 깊이로 영혼을 살찌우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얼마 전 96세로 세상을 떠난 세계적인 경영학자 피터드러커는 타계직전까지 강연과 집필을 계속했다.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고 생사는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일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때까지 살면 시간의 깊이로 완주한 인생이다.
나는 지금도 벽시계를 고집한다. 시간을 보기 위한 것보다. 추억을 살리면서 시간의 깊이를 가슴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싶다. 째깍거리는 시계의 초침과 분침, 시침은 서로 만나고 헤어지면서 자기의 삶을 맛있게 살아간다. 쉼없이 좌우로 흔드는 시계추는 우리에게 평형의 원리와 조화를 가르친다 .
수탉이 “꼬끼오!” 우는 소리와 그림자로 시간을 어림짐작 하던데로부터 벽시계와 핸드폰, 여러 종류의 시계는 우리에게 많은 편리를 주었다. 핸드폰을 보면서 우리는 쉽게 시간을 흘러 버릴 때가 있다. 디지털이 주인이 된 세상에서 나는 어쩐지 그래도 벽시계를 보는 것이 훨씬 편하다.
시간의 길이보다 깊이를 느끼면서 나만의 인생 그래프를 곱게 그리고 싶다.
/한춘옥
http://www.hmzxinwen.com/news/27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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