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다 끝냈을 때는 이미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교화시에서 서둘러 가도 자정이 넘어야 집에 도착할 것 같다. 공교롭게도 주차장 앞 막걸리전문판매점에서 형기를 마치고 금방 감옥에서 나온 고향 친구를 만났다. 그는 간이의자에 앉아 안주도 없이 막걸리를 종이컵에 부어 마시고 있었다.
예전의 자신감 넘치던 모습은 도저히 찾아볼 수 없었다. 얼굴은 주름투성이고 비뚤어진 목은 태풍에 꺾인 나무같이 오른쪽 귀와 어깨가 붙어 있었다. 그 모습은 손에 쥐고 있는 쪼그라진 종이컵과 기묘하게 어울렸다.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보는 그의 초점 잃은 눈빛은 막걸리처럼 혼탁했다. 마누라는 가출하고 아들딸들은 자기를 외면한다며 눈물을 흘릴 때, 나는 돈지갑에 있는 돈까지 탈탈 틀어 그의 손에다 쥐여줬다. 눈물이 창백한 볼을 타고 내려 쪼그라진 종이컵에 떨어졌다.
그와 만나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서둘러 집에 돌아가려는 바쁜 마음이 그대로 액셀러레이터에 전달되었다. 낡은 화물차는 불만의 목소리를 터뜨리는 듯 요란한 소리를 냈다.
“여하튼 사람들은 죄짓고 살지 말아야 해, 한때는 누구나 부러워하던 행복한 가정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풍비박산이 나고……”
고향 친구의 눈물이 종이컵에 떨어지고 또 그것을 마시는 장면은 가슴을 아프게 했다.
터널을 지나자 확 트인 평야 끝자락에 끝없이 펼쳐진 계곡과 흑갈색 산봉우리가 한눈에 뛰었다. 어쩌면 저 기복을 이룬 능선은 인간들의 승자와 패자 사이에 연결된 복잡한 관계의 해답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밤바람이 가볍게 불어오고 산을 배경으로 한 하늘에서는 별들이 하나둘 뜨기 시작했다. 주머니에는 돈 일전도 없다. 점심도 먹지 못했다고 주린 배는 항의하고, 친구의 초점 잃은 혼탁한 눈빛이 자꾸 머릿속에서 맴돌아 정신을 집중할 수 없다.
삼거리에서 길을 잘못 들어 산길로 들어섰다. 차를 되돌려 가파른 내리막길을 달리는데 갑자기 앞에서 검은 물체가 언뜻 보였지만 내리막길이다 보니 곧바로 차를 멈출 수는 없었다. 차바퀴가 검은 물체 위로 지날 때, 마치 과속방지턱을 지날 때처럼 세차게 쿵덕거렸다. 머리가 차 천장을 들이박으면서 나도 모르게 브레이크를 밟았는지 차가 멈춰 섰다.
정신을 가다듬어 사이드미러로 보니 저 멀리 사람 같은 검은 물체가 꼼짝하지 않고 길 한가운데 쓰러져 있었다. ‘내가 사람을 죽였구나!’ 하고 자각하는 사이에 모든 사태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에, 온몸이 떨리고 식은땀까지 돋아났다.
달빛에 비치는 사이드미러를 통해 주위에 목격자가 있는지 다시 살펴보았다. ‘사람을 죽이고 이렇게 도망가면 안 되는데……’ 나의 머릿속 생각들이 뒤죽박죽 엉망이 되고, 금방 만난 친구의 처참한 모습까지 자꾸 눈앞에서 얼른거린다. 나도 모르게 발끝에 힘을 주어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낡은 차는 부르르 떨며 앞으로 질주했다.
그런 뒤 나는 후회, 공포, 절망으로 완전히 무기력해졌다. 그날 밤일만 생각하면 용서할 수 없는 나의 비열한 행동과 형기를 마치고 나온 고향 친구의 처참한 모습이 겹쳐서 심리상 극도의 갈등을 이루었다. 깊은 밤에 여자들은 홀로 산에 오르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 죽은 사람은 한 가족의 가장일 것이고, 한밤중에 깊은 산에 다니는 것을 보아 넉넉하게 사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그 가족은 지금 어찌 될 것일까? 상상만 해도 회한과 괴로움이 가슴을 물어뜯는 것 같았다. 자수할 생각을 하였지만, 금방 만난 고향 친구의 처지가 될까 봐 도저히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나는 날마다 손에는 술병을 놓지 않았고, 밤잠은 수면제에 의지할 정도였다.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과 공포감으로 낯선 전화가 오거나 경찰관만 봐도 두 다리가 떨리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돋아났다. 결국, 우울증을 앓게 되고 병원 치료를 받았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새해가 코앞으로 다가온 섣달 중순의 일요일, 아침 준비를 하는 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가슴이 섬뜩했다. 길림요양병원에서 걸러 온 전화였다. 어머니가 낙상하여 허리를 다쳤다고 빨리 병원에 다녀가라는 것이었다. 머릿속에서는 햇빛만 비쳐도 불붙을 것 같이 바싹 마른 어머니가 떠올랐다. 요즘 머리가 너무 복잡하여 요양병원에 계시는 어머니까지 깜빡 잊고 지냈다.
혈압약을 먹고 서둘러 요양병원에 갈 준비를 했다. 문밖에 나와 보니 칼바람이 살을 에는 듯했다. 너무 추워서 차도 시동이 잘 걸리지 않았다. 차에 오르자 또 머리가 아프고 시야가 흐려졌다. 겨우 운전대를 잡고 한참 달리는데 어쩔 수 없이 낡아 가는 화물차는 오르막 오르는 할머니의 신음을 내며 간신히 달린다.
그 신음 같은 소리는 내 마음을 더욱 불안하게 하였다. 갑자기 시동이 꺼지면서 차가 멈춰 섰다. 아무리 시동을 걸어도 소용이 없었다. 차 밖으로 나오니 찬바람이 얼굴을 바늘처럼 찔렀다. 휴일이라 지나가는 차마저 드물고 손을 흔들어도 세워주지 않았다. 차 안의 온도가 떨어지자 온몸이 점차 굳어지며 심장박동마저 느려졌다. 귀에는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찬바람에 애처롭게 울부짖는 소리만 들리고, 언제 죽었는지 모르는 하루살이 한 마리가 차창유리 오른쪽 귀퉁이에서 까만 점처럼 말라붙어 있는 것이 두 눈에 띄었다. 나는 절망감을 느꼈다.
‘하늘은 끝내 죄인인 나를 용서하지 않는구나!’
이때 낡은 승용차 한 대가 멈춰 서고 젊은 남자가 다가와서 미소를 띠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사정을 얘기하자 두말도 하지 않고 차에서 공구를 꺼내 수리하며 자기 차에 가서 몸을 녹이라고 권했다. 다행히 큰 고장은 아니었다. 온몸은 추위로 굳어진 듯 보이는 그였지만 얼굴만큼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 잠깐 뒤 시동이 걸렸다. 너무나 고마워 백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사례하려 했지만, 한사코 거절하며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하였다.
“저도 다른 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주위에 힘든 분이 있으면 저라고 생각하고 도와주세요.”
그 일이 발생한 뒤, 몇 번이나 경찰서에 가서 자수하려 했지만 끝내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나 설 무렵, 한국에서 며느리가 명절에 쓰라며 돈을 붙여 왔다.
날씨가 포근한 어느 날, 길림에 있는 딸네 집에 볼일도 있고 설 물건도 살 겸 차를 운전하여 서울로 향했다. 외곽도로에 도착할 무렵 점심시간도 지나 길옆에 있는 개장국집으로 들어갔다. 주인인 듯한 젊은 여자가 목발을 짚고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그 옆에는 서너 살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가 신나게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주문한 개장국은 내 입맛에 맞았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알게 되었는데 그녀는 작년 봄에 뺑소니차에 치여 다리를 절게 되었고 그 차는 지금껏 찾지 못했다고 했다. 유심히 듣던 나는 등허리가 서늘해지고 식은땀이 이마에 돋아났다.
밥도 절반 먹다가 일어서 얼른 계산하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주방 옆 작은 방에서 ‘쿵’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달려 가보니 아이가 가지고 놀던 공이 높은 선반에 걸려 있고, 그 아이는 의자를 밟고 공을 꺼내려다가 넘어진 모양이었다. 서둘러 아이를 안고 차에 태워 인근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이 엄마는 다친 아이를 부둥켜안고 병원비는 어디 가서 구하고, 불행은 무엇 때문에 우리 집에만 찾아오느냐며 엉엉 울었다.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에서 촬영해 보니 팔목 윗부분에 금이 갔다고 했다. 한참 뒤 링거 주사를 맞는 아이가 잠이 들고, 그녀는 소매점에 잠깐 다녀오겠다면 나갔다. 어느새 창문밖에는 진눈깨비가 날리며 어둠이 밀려오고 있었다. 자꾸 누가 쫓아와서 뒷덜미를 잡아당기는 것 같아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때 병상 옆 책상 위에 그녀가 놓고 간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화면에는 환한 얼굴에 미소 짓는 젊은 남자의 얼굴과 <남편>이란 두 글자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그것을 본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늘의 뜻이 아니고는 어찌 이렇게 공교로운 인연이 있을 수가 있겠는가! 착잡한 마음으로 주머니에 있는 돈 봉투에 이렇게 썼다.
“지난번 고속도로에서 차가 고장 나서 절망감을 느낄 때 저를 도와준 분이 바로 남편이었네요! 저의 작은 성의이지만 아이의 치료에 도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돈 봉투를 서랍장에 넣고는 도망치듯 병원 밖으로 나왔다. 밖에서는 눈이 펑펑 쏟아져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귓전에서는 방금 아기엄마의 울음소리가 찬바람같이 나의 가슴을 후벼 패는 듯했고, 그 울음소리는 그날 밤 나의 차에 목숨을 잃은 그 가족에서 울려 나오는 것 같았다. 더는 요행만 바라며 살 수가 없었다. 당장 파출소에 찾아가서 자수하고 어떤 형벌이든 죗값을 달갑게 받고 정상적인 생활을 해야 하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파출소에 가서 자수하고, 사고 발생한 날짜와 지점, 시간을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며칠 뒤, 향 림업자원 관리사무소에서 휴대전화에 이런 문자를 보내왔다.
<존경하신 000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확인한 결과 선생님께서는 우리 향에 정말 좋은 일을 하셨습니다. 깊은 밤에 용감하게도 자동차로 그 포악한 멧돼지를 깔아 죽여 주민들의 시름을 덜게 되었습니다. 무서운 멧돼지는 몇 번이나 홍성촌 마을에 덮치어 농작물을 해치고 주민 세 사람이나 중상을 입혀 놓았습니다. 선생님의 용감한 행위에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리며 포상금 일 천팔백 원을 드리니 오셔서 수령해 가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00향 림업자원 관리사무소 책임자
/남태일
http://www.hmzxinwen.com/news/27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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